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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윤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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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욱 생명 에세이
 

운명과 선택의 길목에서... 2018.12.14 삶을 살아가며 정해진 길로 여겨지는 운명(運命)에 순응하며 살아갈지 아니면 선택(選擇)을 통해 운명을 바꾸며 나아갈지는 순전히 자신의 자유의지에 달려있습니다. 합리적인 선택도 운명에 포함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운명과 선택은 서로 교차하며 비슷한 의미와 함께 반대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운명이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면 선택은 정해진 길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침 산책을 마치고 늘상 다니는 사우나장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는데, 건물 현관 안에서 참새 한 마리가 퍼덕퍼덕 날고 있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건물 안으로 잘못 날아 들어와 출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온통 유리판으로 이루어져 있는 공간을 이리저리 날다가 결국 벽에 부딪혀 바닥으로 툭 떨어졌습니다. 얼른 가서 살펴보니 눈을 뜨고 빤히 쳐다보는 모습에 측은한 마음이 들어 몸통을 잡아보니 손끝에 따듯한 기운이 전해왔습니다. 현관 밖으로 들고 나와 다시 공중으로 날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파트 안 길가의 풀숲에 놓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가던 중 다시 참새 모습이 떠오르며, 놓아둔 곳이 혹시 다른 사람이나 동물들의 눈에 뜨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발길을 돌려 다시 참새에게로 갔습니다. 눈을 뜨고 쳐다보는 참새를 잡아보니 퍼덕거리는 몸에서 다시 따듯한 체온이 느껴집니다. 참새를 집어 들어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풀숲에 앉혀놓고 다시 공중으로 날아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잘 보살핀 마음에 기분이 상쾌해진 아침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산책하며 참새를 놓아둔 곳에 가 보았더니 아무런 흔적이 없습니다. 고양이나 다른 날짐승에게 잡아 먹혔는지 모르겠으나 주변에 깃털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전처럼 날갯짓하며 다시 날아갔을 것이라는 긍정적 생각으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문득 참새가 건물 현관에 들어와 날다가 유리벽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져 나를 만난 것은 그 참새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며, 운명론(運命論)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숙명론(宿命論)이라고도 부르는 운명론은 세상일들이 모두 미리 정해진 필연적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하는 개념으로 결정론(決定論)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결정론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연이나 자유 선택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인과법칙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이론입니다. 결정론에 따르면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는 삶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태어날 때 이미 삶의 과정이 인과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운명론도 세상사에 대해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며, 결정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연이나 자유 선택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삶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어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참새가 현관으로 날아와 유리벽에 부딪힌 것이 그 참새의 운명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참새의 순간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의 운명은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요. 세상에 태어나 어린 시절 철없이 마음대로 뛰어놀다가 사춘기가 되면 주변 환경에 대한 불만으로 이리저리 부딪히며 지냅니다. 철이 들어서는 참새가 현관으로 잘못 들어와 나가는 길을 찾다가 벽에 부딪히는 것처럼 사람도 이런저런 욕심으로 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우왕좌왕하다가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답게 늙어가는 웰에이징(Well-aging)과 아름답게 죽음에 이르는 웰다잉(Well-dying)에서 선택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삶에서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로 ‘인생은 B to D’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서 B는 ‘탄생(Birth)’이고, D는 ‘죽음(Death)’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B와 D 사이에 있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C로 ‘선택(Choice)’을 의미하지만 C의 의미에 ‘변화(Change)’를 부가해봅니다. 오늘이란 시간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지만 아침에 일어나 시작하는 일들의 선택은 자신의 몫으로 변화가 가능합니다. 이는 운명이 자신의 선택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삶의 여정에서 운명적으로 중요한 시기는 내면과 양심 그리고 본성이 작용하는 선택의 길목에서 고민할 때입니다. 이런 선택에는 시간제한이 따르는데, 신속한 판단과 바른 결정을 위해서는 충분한 사전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정보는 독서나 대화에서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저물어가는 무술(戊戌)년의 마지막 달을 보내며, 지금까지의 삶에서 자유의지에 따른 변화를 추구하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며 수동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바로 다가오는 기해(己亥)년에는 ‘운명’과 ‘선택’의 길목에서 자유로운 ‘변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을 누려보고자 다짐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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